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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특별기고

"알 수 몰랐다"

 

  1983년 신학교 시절 탁월한 글쟁이가 있었다. 자신의 시를 부산일보에 실으면서 일약 스타가 되었다. 그 학생이 쓴 시구(詩句) 가운데 맨 마지막 표현이 새로워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알 수 몰랐다.” 모호함, 당황, 그리고 이해 불가가 함께 묻어나는 언어유희다. 지금이 그렇다.


   코로나 19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장기화 됨에 따라 피곤도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2월 2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사회적 거리 두기에 대한 대국민 인식조사 결과 보고’에서 만 18세 이상 성인 1,000명 중 응답자의 81.2%는‘거리 두기로 인해 피로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사회의 최소단위인 가족 간의 모임조차도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있으니, 확실히 우리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시대를 걷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경험하지 못한 상황이니 정돈된 대응 매뉴얼이 없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중앙정부의 허둥지둥은 어쩌면 처음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이럴 때 우리는 어쩔 텐가? 조속한 행동지침이 정형화될 수 있도록 기다림과 시행착오를 허용하는 관용이 필요하다. 아쉬움이 있다면 일찌감치 다양한 영역의 리더쉽들과 소통하며 이해를 구하고, 도움을 청하는 낮은 마음의 태도가 중앙정부에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은 소통의 부재에서 나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과정의 산물이 아니었던가? 불편해도 긴 과정을 거쳐야 한다. 목회자들이 제직회와 당회를 존중하고 설득하는 지리한 시간을 견뎌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난하는 자들은 여전히 비난하고, 불편함으로 인한 아우성은 여전하다. 불편함이 그리고 불평등이 어찌 나만의 아픔이겠는가? 모두가 아프지 않는가!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롬8:22)


  나만 아프다고 소리치는 것은 막내의 몫이다.


  대면, 비대면, 사회적 거리 두기, 2단계, 2.5단계, 5인 이상 집합 금지, 자가격리, 확진자. 낯설었던 단어들이 익숙한 용어가 되어버린 지금. 자신의 소리만을 높이기보다는 타인의 고통과 공동체의 상실감을 보듬어가는 성숙함이 아쉽다. 


  “알 수 몰랐다”라고 쓴 시인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시대를 어떻게 일찍이 알았을까? 새삼 그 형제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