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_친구가 된다는 것은 (1)
홈스쿨링을 한다고 하면 가장 먼저 꺼내는 염려가 있다. “친구를 못 사귀지 않겠느냐” “사회성이 떨어지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친구를 만들기 전 가장 처음 맞이하는 사회는 가족이며, 가정이라는 첫 사회에서의 경험이 이후 사회성의 뿌리가 되며 더 넓은 사회로 나아갈 때 유연함과 안정감의 기초가 된다. 바르게 도움을 청하는 법을 배우고, 먼저 손을 내미는 법을 안다. 부모는 친구이며 동시에 부모이다.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때로는 멈추게 하고 기다리게 하는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친밀하지만 분명한 역할이 있는 관계이다. 아이들은 이 복잡한 구조를 의외로 빠르게 이해한다.

친구가 된다는 것은(2)
맏이 은설이는 어떤 아이들을 만나도 큰언니의 모습으로 자상하게 돌본다. 동시에 어른들과의 관계도 편안하다. 며칠 전,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선교사님이 오랜만에 방문하신다는 말을 듣고 펄쩍펄쩍 뛰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이 아이에게 ‘친구’라는 말이 얼마나 넓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다시 보게 되었다.
은겸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은 연령을 가리지 않고 함께하려 한다. 어린아이부터 교회 장로님까지, 심지어 처음 만나는 외국인까지도 자연스럽게 친구가 된다. 주일에는 집사님, 장로님들과 야구를 하고, 어떤 날에는 한국에 공부하러 온 아프리카 학생들에게 체스를 가르치고 있다.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는 데 주저함이 없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자연스럽게 교회의 일상으로 이어진다. 우리 교회는 작은 시골 교회라 어쩔 수 없이 모두가 함께 예배하고 함께 밥을 먹는다. 그래서 주일 하루의 흐름이 나이에 따라 나뉘지 않는다. 아이도 어른도 같은 시간에 움직이고, 같은 공간에 머물며, 같은 하루를 보낸다. 그러다 보니 관계 역시 인위적으로 구분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같은 나이끼리 잠시 어울렸다가 흩어지는 관계가 아니라, 일상을 함께 살아내며 만들어지는 관계이다. 예배당에서, 식탁에서, 마당에서 아이부터 어른까지 계속 마주치고 말을 섞으며 하루를 함께 보낸다.
그래서 이 공동체 안에서는 점점 연령의 벽이 낮아진다. 소그룹 나눔을 아이들과 함께하는데 오히려 아이들이 더 많이 이야기할 때도 있다. 예배를 마치면 장로와 목사, 집사 할 것 없이 예배당 장의자를 밀어 놓고 아이들과 함께 피클볼 같은 뉴스포츠를 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마당으로 나가 야구를 한다. 말씀을 듣거나 무언가를 배울 때에는 분명히 어른과 아이이고 교사와 학생이지만, 함께 놀 때만큼은 다른 표현이 필요 없는 친구가 된다.
이러한 일상의 모습 속에서 ‘친구’라는 개념도 새롭게 정리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종이라 부르지 않고 친구라 부르셨다. 이는 단순한 친근한 표현이 아니라 관계에 대한 선언이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관계는 책임 없는 수평적 관계도, 거리 있는 위계적 관계도 아니었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삶을 나누며, 끝까지 책임지는 관계가 곧 예수님이 말씀하신 친구 됨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친구 된다는 것은 편안함을 누리는 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삶의 방향과 무게를 함께 짊어지는 관계로 부름받는 일이다.
아이들이 나이의 벽을 세우지 않고 두루 친구가 되며 관계를 배워 가는 모습을 바라볼 때, 이 예수님의 친구 됨은 더 이상 추상적인 개념으로 남지 않는다. 친구란 단지 마음이 맞는 사람이 아니라, 불편함을 함께 견디고 관계를 포기하지 않으며 다시 손을 내미는 존재라는 사실을 아이들은 일상 속에서 배운다. 그래서 “예수님이 친구 되신다”는 고백은 감정적인 위로의 문장이 아니라, 어떻게 사람을 대하고 어떤 관계를 살아내야 하는지에 대한 삶의 기준으로 이해되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홈스쿨링 아이들이 어떻게 친구를 만들고 사회성을 키워가는지에 대해 말해 보았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결코 또래 친구가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또래 친구는 그 어떤 관계로도 완전히 대체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하며, 아이들의 성장에 분명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친구를 쉽게 소비하지 않는다. 한 번 만난 친구라도 오래 기억하고, 함께 보낸 시간이 짧았어도 마음에 남겨 둔다. 친구를 위해 기도할 때면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가며 기도한다. 관계의 수가 많지 않기에, 한 사람 한 사람이 더욱 귀하게 여긴다. 정말 좋은 친구 아닌가?
혹시 이런 친구가 필요하다면, 혹은 이런 사랑스런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 주고 싶다면 언제든 찾아와도 좋겠다. 함께 예배하고,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웃고 뛰놀며 하루를 나누는 공동체에는 늘 문이 열려 있다. 친구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고, 친구가 되어 줄 준비가 된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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