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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다음세대

홈스쿨링과 시골교회 “복음으로 시작하는 감사”

  추수감사주일을 앞두고 한 달 동안 감사에 대한 설교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첫 번째 설교를 하고 두 번째 설교를 준비하는데, 마음속에서 질문이 일었다. “이 설교가 과연 성도들에게 어떤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

  나는 누군가 “아무리 말을 해도 듣지를 않는다”라고 푸념하는 것을 들으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렇게 말한다. 말만 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인데, 해도 해도 실패하는 가장 쉬운 방법을 붙들고 있다면 누구의 잘못인가? 말만 하는 것이 얼마나 쉬운 방법이냐 하면, 차라리 아무 말도 안 하는 것보다 더 쉽다. 말만 해서는 다른 사람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도 바뀌지 않는다.

  4주 동안 감사 설교를 하겠다고 광고해 놓은 이상, 정작 내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4주짜리 무책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먼저 감사 실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목사의 설교는 결국 가정에서 드러나는 법이니,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떠올랐다. 아이들도 할 수 있는 감사여야 했고,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감사여야 했다.

  아이들은 매일 아침 말씀을 묵상하는데 복음의 핵심을 스스로 찾아내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아 보였다. 매일 하나님에 대해 말하고 적지만, 정작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감이 없는 듯했다. 사실 말씀을 하루에 적용하며 살아내는 일은 나에게도 어렵다. 말씀과 생활이 서로 어딘가 비껴 있기 때문에, 무엇이 잘 되고 있고 무엇이 부족한지를 평가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바로 감사의 3단계 : 복음으로 시작하는 감사노트(Gospel-centered Thanksgiving Note)였다.

   1단계: 복음(예수 그리스도)으로 감사 시작하기

  감사의 전제 조건은 단순하다. 무조건 쉽고, 누구나 즉시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감사 제목을 물어보면 한참을 생각한다. 기분이 좋지 않거나 상황이 복잡하면 “감사할 게 없다”고 말한다. 그렇게 감사의 첫 단추를 끼우는 순간을 놓쳐버린다.

  그래서 첫 번째 단계는 “복음으로 감사 시작하기”다. 복음은 이미 완성되었고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감사의 제목이기 때문이다. 복음으로 감사를 시작하는 순간, 우리의 감사는 상황의 영향을 받지 않고 흐르기 시작한다.

  매일 복음에 대한 성경구절을 주고 “감사해라” 했더니 아이들은 역시 어려워한다. 그러나 어렵지 않다. 성경 구절을 해석하고 요약해서 멋진 말로 바꾸려고 하니 어려운 것인데, 오히려 잘게 나누는 것이 좋다.

  예를 들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로마서 5:8).

  이 말씀에서 “죄인인 나를 사랑하심 감사”,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죽으심 감사”, “나는 언제나 머뭇거리지만 하나님은 사랑을 확증하심 감사합니다”라고 적는 식이다. 복음을 내 말투의 감사 고백으로 바꾸는 것이다. 복음 그대로 감사할 때 그 감사는 고백인 동시에 선언이 된다.

"아름다운 하늘 감사"

   2단계: 작고 당연한 감사, ‘작당감’

  두 번째 단계는 작고 당연한 감사로 하루를 채우는 것이다. 줄여서 ‘작당감’이다. 아이들에게 어제나 지난 한 주를 돌아보며 감사할 주제를 찾으라고 하면 “없어요, 모르겠어요”라는 대답이 자주 돌아온다. 그 말은 결국 ‘특별한 일’이 있어야 감사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특별한 일로 채워져 있지 않다. 대부분 당연하고도 소소한 일들로 이루어져 있다. 놀라운 점은, 그 당연한 것들 중 대부분은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확실한 은혜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두 번째 단계에서는 감사 제목을 작고 당연한 것으로 제한한다. 그리고 의무적으로 최소 열 개 이상 채우게 한다. 

  아침에 아이들에게 감사 제목 열 개를 채우라고 했더니 몸을 뒤틀며 머리를 쥐어뜯고 앉아 있다. 그래서 감사가 막히면 모두 일어나 밖으로 나가서 앞마당 한 바퀴 뛰고 들어오자! 라고 말했더니 마음 여린 둘째가 추운 날씨에 벌받는 줄 알고 싫다며 울먹울먹한다. 벌이 아니다 ‘작당감’ 찾으러 나가는 것이다라고 달래며 억지로 한 바퀴 놀러 나갔다가 다섯 바퀴 돌고 들어오니 놀랍게도 감사가 술술 나온다. “햇살 감사” “낙엽 감사” “시원한 물 감사” 놀랍게도 “함께 재미있게 운동한 것 감사”까지 나온다.

  작당감은 책상에 앉아서 억지로 짜낼 수 없다. 책상에 앉으면 문제만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몸을 움직여 시선을 돌리는 것이다. 우리의 시선을 감사의 제목이 가득한 하나님 나라의 구석구석으로 다시 돌려놓는 일이 바로 작당감의 핵심이다.

  3단계: 감사를 표현하고 자랑하기

복음으로 시작하고 작당감으로 채워진 감사는 마음속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삶 속으로 흘러가야 한다. 그래서 마지막 단계는 ‘감사를 표현하고 자랑하는 것’이다.

  감사 표현은 가족과 이웃에게 감사의 마음을 직접 전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작당감’의 원칙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한 걸 뭐 감사해?”라는 생각은 섭섭함을 낳고 싸움만 만든다.

  감사 자랑은 내가 경험하는 작당감과 복음 감사를 입버릇처럼 주변에 들리게 하는 것이다. 감사가 입으로 새어 나올 만큼 넘치는 것이다. 내가 본 복음의 은혜, 내가 발견한 작당감, 내 하루에 스며든 작은 기쁨들을 숨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 단계가 실제 삶에 스며들도록 우리 가족은 아침에 최소 세 사람의 이름과 그들에게 감사할 한 가지 이유를 적고, 자기 전에는 그 감사를 실제로 표현했는지 체크한다. 또한 오늘 몇 명에게 감사 자랑을 했는지 기록한다. 감사가 마음속에서 끝나버리지 않고 현실로 흘러가도록 붙잡아주는 마지막 고리다.

   감사가 바꿔놓은 것들

  작은 시도로 보였지만 놀라운 변화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가장 크게 변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아내와 의견이 달라 다툼이 생긴 적이 있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좁혀지지 않고 감정만 상해 갔다. ‘내가 맞고 당신이 틀렸다’는 생각이 강해 사과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감사노트를 쓰다 보니 내가 적는 감사의 절반 이상이 아내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감사를 표현해야 하는데 이 상태로는 도무지 불가능했고, 아이들 보기에도 민망했다. 억지로나 의무가 아니라, 진짜 감사한데 말하지 못하니 나 스스로가 더 답답해지는 상황이 된 것이다.

  결국 아내에게 먼저 “미안해”라고 말했다. 그 순간까지도 솔직히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놀랍게도 미안하다고 말하고 나니 내가 잘못한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내도 “미안해”라고 답했다. 다행이다. 드디어 다시 마음껏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성도들 가운데도 감사를 시작하고 달라진 분위기에 깜짝 놀라게 된다. 대화의 주제가 달라지고 분위기가 달라진다. 서로 당연한 것들을 감사로 표현하니 어디서나 감사가 중심이 된다. 생각의 빈틈, 대화의 빈틈에는 언제나 걱정과 염려, 불평과 불만이 채워지기 마련인데, 먼저 감사로 빈틈을 채우니 그 자리에 다른 것이 끼어들 틈이 없다. 각자의 가정에서도 변화의 목소리가 들려오니 감동이다.

  물론 감사노트 하나로 변했다라고 할 수는 없지만, 감사노트를 통해 작당감을 찾고 표현하고 자랑하게 되니 공동체 안에서 더 힘을 얻는다.

  지난 한달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복음으로 시작하고, 작당감으로 채우고, 감사하고 자랑하는 이 삼단계 감사를 자신 있게 추천한다. 거창한 이름을 붙였지만 사실 너무나 단순하고 익숙한 감사다. 중요한 건 하느냐, 하지 않느냐이다.

  글을 마무리하는데 첫째 은설이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아빠 웃겨주셔서 감사해요.”

류주형 목사(행복한전원 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