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사시대는 혼란의 시대다. 소출이 부족해서 혼란 한 것이 아니다. 왕이 없음으로 각기 자기소견대로 행했기 때문이다. 왕이 없다는 말은 기준이 없었다는 말이다. 다른 말로 하면 기준이 너무 많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이다. 모두가 기준이 되니 사람들이 길을 잃어버렸다. 그것이 혼란이다. 자기 안에 인격이 너무 많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마도 정신착란에 빠질 것이다.
가정에는 아버지가 기준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여럿이니 진정한 의미에서 아버지는 없는 것이다. 종교다원주의자들에게 묻고 싶다. “아버지가 한분이어서 불편 하신가요?”
그러므로 엄밀하게 말하면 사사시대는 모든 것이 없는 상실의 시대라 할 수 있다. 이런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가정에 “없음”이 충만한 가정이 있었다. 바로 삼손 가정이다.
삼손의 부모 마노아 부부는 “불임”이다. 당시의 의미로는 “helplessness_도울자없음” “hopelessness_소망없음”을 뜻한다. 약한 단지파 출신인 마노아가 사는 “소라”는 블레셋과 유다 지파의 접경지이다. 국경지대는 지금도 위험한 곳이다. “소라”의 뜻을 들어보라. “비참하다”란 뜻을 가진 동네다. 그러니 삼손가정은 온통 “없음”과 “약함” 투성인 것이다.
삼손이 등장하기 전에 나타난 사사들은 엄청난 자식들을 자랑했다. 삼손 바로 전 사사의 모습은 모든 것이 충만이었다. 입산에게는 아들 30명, 딸 30명이 있었다. 압돈에게는 아들 40명과 손자 30명이 있었다. 삼손가정과는 너무나도 대비되는 “넘침”이었다.

어둠의 시대, 모든 것이 비어 있는 빈잔의 자리에 하나님의 사자가 찾아 오셨다. 삼손 아버지인 마노아가 하나님의 사자의 이름을 물었다. 하나님의 사자는 자신을 “기묘자(삿13:18)”라고 소개했다. “기묘자”는 예수님의 이름이다.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사6:9)
하나님이 비참한 가정에 오신 것이다. 그 결과 불임의 가정에 아들이 태어난다. 아기를 기르는 방법까지 알려주신다. 그 유명한 삼손이야기다.
가장 짙은 어둠은 새벽과 맞닿아져있다. 어두운 밤 어둠이 깊어 날이 다시는 밝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 곳에 빛으로 예수님이 오셨다. 하나님의 사자이신 기묘자에게 삼손부부가 제단(예배)를 쌓았다.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이에 마노아가 염소 새끼와 소제물을 가져다가 바퀴 위에서 여호와께 드리매 기적이 일어난지라”(삿13:19)
절망의 순간에 성령을 경험하는 길은 여전히 예배하는 것이다. 예배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지름길이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붙들어라.
예배 때 어둠이 사라진다.
예배 때 병이 낫는다.
예배 때 귀신이 쫓겨난다.
예배 때 막힌 것이 뚫린다.
예배 때, 안보이던 길이 보인다.
예배 때 대적이 무너진다.
인생의 판도를 바꾸고 싶다면 예배에 승리하라!
예배를 잃어버린 세대에 예수님이 오셨다. 그분을 만나면 “없음”이 “넘침”으로 변할 것이다.
그래서...,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예배 하러 간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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