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왕상19:11~13 >
차를 운전하다 보면 이상하리만치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어 일사천리로 길을 가는 날이 있다. 이처럼 우리 인생도 초록불 인생이면 좋겠는데, 살다 보면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차처럼 인생에도 덜컹거림과 가시같은 고통이 찌를 때가 많다.
죽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 엄청난 하나님의 종 엘리야. 그는 북이스라엘 최고의 정권인 아합과 이세벨에 맞서는 영적 권위를 가졌다. 하나님만을 위해 순종하고 충성하는 당위성을 가진 엘리야 정도면 백성들의 지지와 격려가 많았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엘리야의 사역은 굴곡과 고난의 연속이다. 만사형통, 일사천리와는 먼 사역자이다.
바알과 아세라 우상 중독에 빠진 아합왕과 이세벨에 맞서 싸워 갈멜산의 불의 기적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극명하게 나타났다. 영적 개혁이 충분히 기대되는 일이다. 그런데 아합과 이세벨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현장 목격자들인 백성들조차 하룻밤 불꽃놀이 온 관광객처럼 금방 잊어버리고 일상으로 돌아가 우상숭배 가운데 머문다. 북이스라엘의 영적 암흑기를 끝낼 엘리야의 기대는 백성들의 무관심과 영적 타성에 무너져 버리고 그는 절망한다.
이세벨의 살해 위협에 모든 것을 뒤로하고 떠밀리듯 광야로 도망가는 신세가 된다. 40주야를 겨우겨우 걸어 호렙산 동굴로 숨은 번아웃 된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네가 어찌 여기 있느냐(왕상19:14)” 나는 이 질문이 이렇게 들렸다. “여기에 너는 나와 함께 하느냐?” 그런데 엘리야는 동문서답한다. 하나님께서는 말씀만으로 안되니 자신을 나타내신다.
지금 엘리야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이다. 먼저 초자연적인 바람과 지진과 불을 보여 주신다. “그렇지 저게 하나님이지..역시 기적과 이적과 엄청난 위력을 보이셔야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지!”나라면 많은 용기를 얻었을 것이다. 그런데 마땅히 기대했던 하나님은 그 큰 힘과 위력 가운데 보이지 않으셨다.
그런데 앞서 나타난 엄청난 위력과 힘에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우리가 전혀 관심 가지지 않을 미세한 음성 가운데 하나님이 나타나셨다. 미세한 소리 그 뜻밖의 소리, 우리가 흔히 바라보는 힘과 권세와 물질로 대변되는 보여지는 능력이 아닌 충분히 그런 힘에 묻히고 가려진, 집중하지 않으면 인지할 수 없는 뜻밖의 아주 작은 말씀으로 다가오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네가 어찌 여기 있느냐”고 질문에 똑같은 대답을 하는 엘리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함께 함과 하나님이 준비하신 계획과 남겨진 7천 명의 동역자가 있음을 말씀하시며 새로운 사명을 부여하시고 엘리야의 사역 하반기를 시작하게 하신다. 그리고 그는 아름다운 사역을 마무리하게 된다.
이 세상은 큰 기적, 큰 업적 큰 열매를 기대한다. 그리스도인조차 보여지고 만져지고 들려지는 손에 쥘 수 있는 것을 우선시한다. 큰바람과 지진과 불, 혹은 갈멜산 기적 같은 것을 통해 하나님이 함께하시기도 하지만, 현실의 고난과 어려움에 처한 엘리야와 같은 처지에 놓인 우리를 다시 일으키시고 사명을 감당하게 하실 것은 미세한 하나님의 음성, 즉 말씀이라는 사실을 마음에 담기 바란다. 우리의 일상 가운데 미세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현실에 마주한 거대한 파고를 잘 이겨내는 우리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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