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를 가진 분들은 개인별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논리에 취약하다. 지적장애인들을 ‘발달장애인’으로 부르기도 한다. 울산에 있는 장애인은 5만 명 정도이며 발달장애인은(자폐증 포함) 대략 4,000-6,000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정부 기관과 사회적 인식 개선으로 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신앙인들은 육신적인 부분을 포함해서 영적인 영역에도 관심이 많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이해를 추구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전도 쪽지 ‘4영리’는 매우 간결하면서도 집약적인 전도지이다. 그리고 논리적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죄인들은 사랑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구원을 위해 엉뚱한 노력을 기울이지만 허사이다.”, “그리스도예수님의 십자가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 “당신은 죄인임을 인정하고 그리스도 예수를 당신 삶의 주인으로 모시겠는가?”, “그렇다면 당신을 위해 영접기도를 도와드리겠다.” 등으로 논리가 전개된다.
놀랍게도 많은 지적장애인들은 이러한 복음제시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논리에 취약한 이들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가?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은 복음에서조차 소외되었는가? 이에 대해 모두 함께 고민하고, 생각해보기를 제안한다.
설성제 편집위원
“유아세례의 모델에 의한 신학적인 유비와 또 교회론의 관점에서 지적장애인들의 세례 가능성에 대해 열린 입장을 취할 수 있다는 신학적 유추를 내렸다. 그렇지만 지적장애인 본인이나 그 가족을 단지 인간적으로 위로하는 차원에서 세례를 고려하는 일은 삼가야 한다. 세례가 자동적으로 중생과 구원의 방편이 아니기 때문에 지적장애인이 세례를 받음으로 어떤 가시적인 유익을 얻을 것인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렇지만 세례를 은혜의 방편으로 생각할 때 이를 통해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성령께서 역사하여 수세자의 내적인 믿음을 증가시키고 약속된 은혜와 복을 주실 수 있다. 이 징표를 통해 지적장애인들은 자신들이 교회의 한 일원이라는 생각을 더 갖게 될 수 있으며, 이들의 가족이나 후견인들은 이들을 신앙으로 더 잘 돌보겠다는 고백과 다짐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교회 공동체는 지적 장애인들도 자기들과 함께 연합되어 그리스도인의 몸을 완성시켜 간다는 의식을 재확인할 수 있기에 지적장애인들에 대한 세례시행은 공동체 모두에게 유익이 될 수 있다.”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 <지적 장애인 세례 지침>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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