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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다음세대

“시골 교회와 홈스쿨링, 은혜의 여정”

  행복한 전원교회 예배당, 아직 해가 뜨기 전 불을 켜고 조용히 앉아 기도합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그 내용을 성도들에게 보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면 아내는 아침을 준비하고, 첫째, 둘째, 셋째는 테이블에 자기들끼리 둘러앉아 제가 보낸 글과 함께 조잘조잘대며 큐티를 하고 있습니다. 어린 넷째는 고맙게도 아직 자고 있습니다. 이것이 저희 ‘설송겸결 은혜학교’, 행복한 홈스쿨의 아침 풍경입니다.

은설, 은송, 은겸, 은결이 있는 "설송겸결 은혜학교" 하나님께서 시절을 좆아 과실을 맺게 하십니다.

  필리핀 수상 빈민촌 원주민들을 위한 선교사역 중 셋째가 생겨 한국에 돌아왔을 때, 두 가지 무모한 선언을 했습니다. 아이들을 홈스쿨링으로 교육하겠다는 것과 돈을 벌기 위한 직장을 갖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애초에 선교지에서도 유치원에 보내지 않았지만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이었기에 전격적으로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직장도 모아놓은 돈도 없는 상황에서 아내에게는 “굶게 되면 막노동이라도 할 테니 한번 해보자”고 했고, 아내는 그 모험에 동참해 주었습니다.

  아이들 이름의 뜻이 저희 학교의 교훈이 되었습니다. 은설(은혜를 말하라), 은송(은혜를 노래하라), 은겸(은혜 앞에서 겸손하라). 유일한 진리인 하나님 말씀을 중심으로 배우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사용하여 표현하고, 배운 것을 삶의 모든 부분에 가라앉혀 적용하자는 의미입니다. 구체적인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처음 1~2년은 신나게 놀고 찬양하며 아이들도 저와 아내도 모두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지만, 점차 현실적인 한계가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인정하기 어려웠지만 결단을 내려야 할 날이 다가오고 있었음이 분명했습니다.

  그때, 모교회인 행복한 전원교회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담임목사님께서 건강 문제로 조기 은퇴하시면서 교회 출신 교역자가 사역을 이어가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전혀 예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고 여러 가지 산적한 문제들로 가능할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의 삶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마치 어머니와도 같은 교회였기에 은혜를 갚는 마음으로 수락했습니다. 전도사의 신분으로 담임을 맡고, 휴학했던 신대원으로 돌아가 남은 2년을 마쳐야 했으며, 교회 사정도 좋지 않았습니다. 교회에는 십여 명의 성도가 있었고, 남자 중에는 장로님이 가장 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이 이해되지 않는 일은 홈스쿨링을 포기해야 할 시점에서 하나님께서 저희 가정에 주신 선물이었습니다. 홈스쿨링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할 수 있지만 이것은 단순한 교육 방법을 선택한 것이 아닌 우리 가정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복음 중심으로 살아가기로 다짐한 서원과도 같은 결정이었기에 포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사택으로 이사 온 후, 아내가 물었습니다.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어요?” 저는 “우리 아이들 잘 키울 수 있는 교회”라고 답했습니다. 아내는 의아해하며 “그렇게 개인적인 목표로 담임할 수 있나요? 그럴 거면 시작하기 전에 그만두는 게 낫지 않을까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설명했습니다. “우리 아이 잘 키울 수 있는 교회가 목표라는 건 그만큼 정성을 쏟겠다는 거에요. 사실 이런 목표를 가지면 목회자는 도망갈 곳이 없어요. 교회에서도, 가정에서도, 그 사이에서도 동일하게 살아야 하니까요.”

  그로부터 5년이 흘렀습니다. 셋째가 생겨 한국에 들어왔는데 이제는 네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고, 교회 주일학교도 두 명이 더해져 여섯 명이 되었습니다. 5년이 다 되어 가는데 너무 더디게 성장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수로만 판단할 수 없습니다. 매년 여름, 두세 가정이 모여 여름성경학교를 하던 것이 작년에는 작은 교회 여섯 곳이 함께하는 연합캠프로 발전했고, 올해도 역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홈스쿨을 돌아보면 솔직히 훌륭하다 할 수는 없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믿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제가 상담과 사회복지를 전공했고, 아내는 유아교육을 전공한 유치원 선생님이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아내는 수석졸업이라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신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여지없이 무너졌습니다. 아이들의 마음은 알 길이 없고 교육과 훈육은 날이 갈수록 오리무중입니다.

  교회도 ‘우리 아이 잘 키울 수 있는 교회’가 되었느냐 한다면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행복하냐 물어본다면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아이들과 성도들의 얼굴에 만발한 미소들을 보면 나 혼자만의 착각이 아니라는 확신이 듭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시작된 저희의 홈스쿨링과 시골교회 사역은, 드디어 목사 안수를 앞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부족함이 많고 때로는 길을 잃은 것 같은 순간도 있지만, 그래서 매일 갈팡질팡 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아이 잘 키울 수 있는 교회’라는 목표는 변함없습니다. 행복한 전원교회나 행복한 홈스쿨링이나 여러분들의 기도와 응원이 필요합니다. 도움도 필요하고 조언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함께 아이들을 키워나가는 공동체를 이루어갈 동역자들입니다. 부족하지만 염려는 없습니다. 나의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오직 은혜로 시작하였으니 역시 준비하신 때에 은혜로 채워지기를 기다립니다. 

행복한 아이들, 행복한 전원교회 성도들, 글로벌 크리스천 리더를 꿈꾸는  KINGS 대학원생이 함께 감사예배를 드립니다. 시골교회의 은혜로운 여정을 응원합니다.

  행복한 전원교회는 모든 세대 통합예배로 30~40여명이 함께 예배드리며, KINGS 대학원(한국전력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에 재학중인 외국인 대학원생의 예배를 동역하고 있다. 이들이 학업을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가 크리스천 리더로  설 수 있도록 신앙훈련을 겸하고 있다.

  KINGS 대학원은 원자력 및 에너지 산업분야의 리더급 전문인력 양성하며, 아프리카, 동남아 등 글로벌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원전 수출 기반 조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