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 이주민 선교가 벌써 30년이 지났다. 지난 30년 동안의 한국 교회의 이주민 선교는 크게 두 가지 모델로 진행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첫 번째 모델은 ‘이주민을 위한 선교’(mission for the migrants)로, 한국인 사역자와 한국인 봉사자들이 주도하는 한국인 중심의 선교이다. 여기서는 한국인이 선교의 주체가 되고, 이주민이 선교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이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mission to the migrants)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반대편에 있는 또 다른 한 모델은 ‘이주민에 의한 선교’(mission by the migrants)로, 베트남교회, 중국인교회, 태국인교회, 러시아교회 등 이주민 중심의 디아스포라 공동체가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선교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이주민이 선교의 주체가 되고, 또 다른 이주민이 선교의 대상이 된다. 이 두 가지 모델은 겉모습은 매우 다르지만, 사실은 많은 점에서 비슷하다. 한국인과 이주민이 따로 분리되어 있으며, 두 그룹이 동등한 위치에서 함께 교제하고, 함께 섬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시티센터교회는 제 3의 모델, 즉 ‘이주민과 함께하는 선교’(mission with the migrants)를 위해 개척된 교회이다. 한국인과 이주민이 따로 분리되어, 일방적으로 한 그룹이 다른 그룹을 돕고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예배하고 함께 교제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돕고 섬기는 모델이다. 이 모델에서는 한국인과 이주민이 선교의 공동 주체가 되고, 한국인과 이주민이 둘 다 선교의 대상이 된다. 한국인이 이주민에게, 이주민이 한국인에게, 한국인과 이주민이 한국인과 이주민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이주민과 함께하는 선교를 위해서는 두 그룹에게 공동의 목표가 필요한데, 그것은 바로 ‘도시 선교’의 비전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를 섬기기 위해, 이 도시 안의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써 도시 안에서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일을 위해, 한국인과 이주민을 함께 선교의 동역자이자 파트너로 부르신 것이다. 이것이 우리 교회의 세 번째 비전이 “Blessing”(복이 되기)인 이유다. 그래서 나는 설교나 강의를 통해 이 선교적 비전을 계속해서 공유하고 선교적 삶을 살도록 도전한다.
“여러분은 이 모든 것이 편리하고 빠르고 안전한 나라에 와서 복을 많이 누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분명 복을 많이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여러분만 복을 받고 끝내라고 여기로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통해서 다른 이들에게 그 복을 전하기 위해, 여러분을 통해 여러분의 가족들과 직장 동료들과 여러분이 가르치는 학생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을 받게 하시려고 여러분을 여기로 보내셨습니다. 여러분이 복을 받은 것은 누군가에게 복이 되기 위함입니다. 여러분은 이 도시의 선교사입니다. 여러분이 살고 일하는 그곳이 바로 선교지입니다!”
“여러분, 전투함 안에 탑승한 사람들은 모두 전투에 참전 중인 용사들입니다. 비록 미사일을 쏘지 않더라도, 빨래를 하거나 청소를 하고, 요리를 하고, 기계를 수리하고, 교육을 한다고 해도 여전히 전투에 참여하는 중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시티센터교회는 울산이라는 도시를 선교하기 위해 도시 중심으로 파견된 선교함입니다. 이 선교함에 탑승한 여러분은 직접 복음을 전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다양한 방법으로 선교 사역에 동참 중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조금씩 우리 영어 멤버들도 자신들을 선교사로 인식하고 있고 다양한 선교적 활동에 동참하고 있다. 교회 학교 교사로, 어린이 돌봄으로, 예배안내팀으로, 찬양팀과 미디어팀으로, 청소를 하고 의자를 정리하고, 음식을 요리하거나 설거지를 하고, 또 때로는 길거리에 나가 찬양으로 버스킹을 하면서, 믿지 않는 가정의 자녀들을 위한 영어 프로그램에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면서, 또 어떤 이들은 헌금과 후원으로 시티센터교회라는 선교함이 계속 유지되고 나아가도록 힘을 합치고 있다.
2022년 2월 아프간에서 들어온 특별기 여자들과 그들의 가족 158명이 갑자기 울산으로 이주를 했다. 우리 교회도 그 분들 중 세 가정과 관계를 맺을 수 있었는데, 한 번은 우리 교회 멤버들과 함께 주일예배를 마치고 아프간 이웃의 가정들을 방문했다. 아무런 준비도 예고도 없이 갑자기 조국과 고향과 친척을 다 떠나야 했던 그분들의 아픔을 들을 수 있었다. 특히 언어도 문화도 너무나 다른, 낯선 대한민국에 와서 부모와 자녀들이 적응하고 정착하는 어려움에 대해 듣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고 난 뒤,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시집을 와서 살고 있는 Ariane이라고 하는 자매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도 그 아픔 알아요.” 그리고 그 말을 듣던 다른 영어 멤버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동병상련이라고 했던가. 그리운 고향과 조국을 떠나야 했던, 그리고 낯선 환경 속에서 적응하고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그 그리움과 설움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공감하는 이들이 바로 우리 영어 멤버들이었다. 그 순간에는 어떤 한국인들도 할 수 없는 공감과 위로를 우리 영어 멤버들이 해줄 수 있었던 것이다. 이후로도 가족들끼리 우정 관계를 맺으며 함께 소풍도 가고 조건 없는 환대와 사랑을 실천했다.
또 필리핀 출신의 근로자인 Vergel 형제가 있다. 경주 라이프그룹의 리더이자 미디어팀의 리더로 울산교회 영어예배부 때부터 10년 넘게 신실하게 교회를 섬겼다. 평소 과묵하고 조용한 성격이었지만, 주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매우 깊고 진실했으며, 예수님을 닮은 겸손하고 온유한 인격을 가진 분이었다. 하루는 상담과 기도 요청을 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공장에 있는 한국인 과장님이 자신을 포함한 필리핀 근로자들에게 언어적, 신체적 폭력을 가한다는 것이었다. 정말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도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오르고 억울하고 분해서 똑같이 갚아주고 싶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약 30명의 필리핀 동료 근로자들이 자기가 크리스천인 걸 알고 시티센터교회 성도인 걸 알기 때문에 함부로 감정에 치우쳐 행동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직장 동료들에게 끝까지 좋은 크리스천의 본을 보여주고 싶다며 잘 인내하고 지혜롭게 행동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정말로 복음을 따라 살려고, 주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하나님이 자신을 이 도시와 회사의 선교사로 보내셨음을 확신하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이주민과 함께하는 선교, 이것이 룻기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헤세드이다. 하나님은 사사시대 영적 무질서와 타락으로 무너져가고 있던 베들레헴과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헤세드의 언약적 인애를 베푸시는데 유대인이자 원주민었던 보아스만 사용하지 않으셨다. (사실은 보아스도 여리고 성의 이주민 라합의 후손이었다.) 모압 출신 이주민이었던 룻도 사용하셨다. 룻은 오늘날로 치면 외국에서 이주한 결혼이주여성이자, 외국인 근로자였다. 그녀는 지극히 평범한 여인이었고, 사실 그녀가 한 것이라고는 그저 시어머니를 잘 모시고 나이 많은 유대인 남자 보아스와 결혼해서 오벳이라는 아들을 낳아 잘 키운 것뿐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런 평범한 일상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한 이주민 룻을 통해 이스라엘 역사의 가장 위대한 왕으로 존경받는 다윗이 나왔다는 것이다. 룻은 다윗의 증조 어머니가 되었고, 다윗은 보아스와 룻의 결혼을 통해 이루어진, 소위 말하는 ‘국제결혼가정’ 또는 ‘다문화가정’ 4세대였다. 또 나아가 룻은 결국 온 세상의 구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주민 룻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헤세드가 온 인류에게 미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구원 역사를 위해 원주민인 보아스만 아니라, 이주민인 룻도 함께 사용하셨다. 보아스와 룻이 하나 되어 연합할 때, 하나님의 헤세드는 이 땅에 이루어진다. 이것이 내가 가진 ‘이주민과 함께하는 선교’의 비전, 즉 룻과 보아스의 헤세드 미션이다.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다른 문화의 사람들과 함께 걷는 길은 더디고 불편한 길이다. 하지만 2인 3각 달리기를 하듯 보조를 맞추어 동행한다면 그 길을 더 즐겁게, 더 오래 갈 수 있다. 앞으로 다가올 완전히 새로운 다문화 사회에서의 이주민 선교는 새로운 선교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한국인들이 주체가 되는 ‘이주민을 위한 선교’(mission for the migrants)나 디아스포라 이주민들이 주체가 되는 ‘이주민에 의한 선교’(mission by the migrants)를 넘어서, 한국인과 이주민이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를 도시 선교를 위한 파트너이자 하나님의 선교의 동역자로 인정하면서 함께 걸어가는 ‘이주민과 함께하는 선교’(mission with the migrants)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한국인이건 이주민이건 관계없이, 모든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복이 되시기 위해 본토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 이 땅에서 친히 이주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영적 이주민들’(spiritual migrants)이다. 한국인과 이주민이라는 구별과 차이를 넘어 그리스도인, 영적 이주민, 천국 시민권자라는 제 3의 정체성 안에서 우리는 하나 될 수 있고, 함께 걸어갈 수 있다. 우리 모두가 영적 이주민이라는 제 3의 정체성 안에서 연합할 때, 앞으로의 한국 이주민선교는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이주민으로서의 선교’(mission as the migrants)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교계 > 선교와 전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귐" (0) | 2025.01.30 |
---|---|
"하나님의 영이 임한 사람들"(민11:24~25) (0) | 2025.01.30 |
"본향이란 소망... 지금 이곳에도 소망" (박재현/정은실M 선교편지에서) (1) | 2025.01.01 |
"2024 울산크리스마스 뮤직페스티벌" (0) | 2025.01.01 |
"일터에서 드리는 삶의 예배" (2) | 2025.0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