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흐드러지게 필 즈음 하동 시내에서 몇 번 굽이쳐 산등선을 돌아서 가다 보면 하동군 적량면 소재지가 나온다. 아주 자그마한 면 소재지에서 다시 산을 하나 넘어가면 “커피문화마을”이 나온다. 소위 “양탕국_서양사람들이 마시는 탕국_커피를 지칭함”이라고도 불리우는 아주 특별한 곳이다. 양탕국 대표는 현재 목사님이시다.(홍경일 목사) 그분을 처음 만났을 때는 집사로 봉사할 때였다. 그분과 함께 하나님나라에 대하여 나눔을 할 때마다 큰 은혜의 흐름을 느낀다.
“우리는 선교사로 이 땅에 와서 선교사의 삶을 살다가 선교사로 주님께 돌아간다”라고 했던 그의 고백이 예사롭지 않았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만난 선교사의 고백을 하동에서 들은 것이다. 그는 문화 사역자이며 문화 선교사이다.
울산에는 그에 못지않게 귀하고 복된 한 사람이 또 있다. 그는 마재영 장로(울산강남교회, 한국문인협회원)이시다. 한국 WEC 국제선교회 울산지부장으로 섬기면서 교회에서는 장로로 아내는 권사로 봉사하고 있다. 평신도의 삶 속에서 선교적 열망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물론 많은 평신도들이 그들이 속한 지역, 직장, 사업장, 교회, 가정 속에서 각각의 선교적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지역교회 목사님들의 양육과 기도 속에 꽃피워진 열매임이 틀림없다. 마재영 장로의 “그리하면 살리라(출판사_좋은땅)”에 나오는 글을 하나 소개한다.
“신앙인에게 소명자란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고 그 부르심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을 말한다. (중략)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부르신 분의 뜻을 따라 살아간다. 이것이 소명자의 길이요, 삶이다.(중략)
소명자는 항상 그 부르신 분의 뜻이 무엇인지 늘 생각하면서 살아간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르신 분과 다른 목표나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면 안된다.(중략)
세상은 급속히 발전하고 변하고 있다. 때때로 불안과 위기감을 크게 느낄 정도로 어지럽고 혼란한 시대임을 절감하며 살아간다. 어떤 고난과 상황에도 부르심의 뜻을 따라 자신의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바쳤던 믿음의 선배들처럼 우리도 소명자의 삶을 감당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마재영에세이2집 그리하면 살리라_‘소명자의 길’에서)
목회자가 되는 과정은 신학대학원에서 수련을 마치고 나면 지역교회에서 일정기간 동안 수련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는 목사고시를 통과해야 한다. 주로 면접관들이 공통으로 하는 질문이 있다.
“당신을 목회자로 부르신 부름의 증거가 무엇인가요?” 그러면 “기도하던 중에 부르심을 확신하였습니다.”고 대답한다. 그러면 다시 면접관이 묻습니다. 그것은 개인적인 내적 확신이지만 “그렇다면 외적인 확신은 무엇입니까?”라고 다시 묻는다.
“외적인 확신”이 무엇인가요? 그것은 그 사람을 설교자로 “청빙하는 교회”가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설교자로 청빙하는 교회가 없으면 시험을 잘 치뤘다하더라도 “목사안수”를 연기한다.
그렇다면 평신도의 삶 가운데 우리 각자를 선교사로 이 땅에 부르셨다는 “외적인 확신”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들이 속한 학교, 가정, 직장, 교회 등 생태계 속에 속한 자신을 확인하는 것이 “외적인 확신”인 것이다. 내가 섬겨야 할 대상이 있는 곳, 내가 져야 할 십자가가 있는 장소 바로 그곳으로 우리를 보내셨음을 확인하는 것이 “외적 확신”이다.
가끔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생긴 갈등으로 그 공동체를 이탈하고 싶은 충동이 얼마나 많이 그리고 자주 일어나나요?
여러 해 전에 어느 선교지에서 무장 강도들에게 선교사님의 아내를 잃은 한 선교사가 마음을 추스르고 그 땅으로 다시 돌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부르심” 때문입니다. 우리모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내게 주어진 길을 걸어간다.
크리스챤 시인 이었던 구상의 “꽃자리”라는 제목의 한 싯구가 떠오른다.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구상 <꽃자리>
김화선 권사(주닮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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