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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문화

고난을 통한 은혜의 열매 - 심은신 작가의 소설 <마태수난곡>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바흐의 고난,
그리고 인간이 겪는 고난과 그 열매를 차분하게 소설로 녹여내


“고난 가운데 서 있는 성도들에게 작은 위로와 소망이 되기를”


  단편소설 <마태수난곡>은 2018년 9월 출간된 자작 소설집 『마태수난곡』에 수록된 표제작이다. 보잘것없고 연약한 한 인간의 삶에 닥치는 고난의 의미가 무엇인지 신앙 안에서 천착하기 위해 창작한 작품이다. 처음 소설집이 출간되었을 때 많은 분이 표제 ‘마태수난곡’이 무엇인지 궁금해하셨다. ‘마태수난곡’은 클래식 역사상 바로크 시대를 풍미한 음악의 아버지 바흐의 오라토리오 작품 제목이다. 신약성경 마태복음 26장과 27장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주제로 하고 있으며 독창과 아리아, 합창 등 전 78곡으로 구성되어있는데 전체를 연주하려면 세 시간 정도 소요되는 대작이다. 1729년 고난주간에 바흐가 성 토마스 교회에서 초연한 후 사람들에게 잊혔다가 꼭 백 년 뒤인 1829년 라이프치히의 오케스트라 지휘자였던 멘델스존에 의해 재연되었다. 이후 마태수난곡은 세간에 널리 알려졌고 바흐 또한 탁월한 음악가로 재평가 받게 된 작품이다.

 


  바흐는 평생 그의 신실한 믿음을 음악 속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모든 작품 끝에 Soli Deo Gloria(오직 주께 영광)를 써넣어 위대한 작곡이 자신의 재능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했다. 궁정 악사의 8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난 바흐는 불과 10세에 양친을 모두 잃었다. 맏형에게 얹혀살면서 외로움 속에 음악을 배웠고 가난한 연주자로 살았다. 결혼하여 네 아이를 낳아 기르던 중 아내가 병사했고 늙어서는 실명의 고난도 겪었다. 연이은 생의 고난을 겪는 중에도 그는 묵묵히 슬픔을 정제하여 아름다운 음악으로 빚어냈다. 성공을 갈구하기보다는 성실하게 작곡하고, 연주하고, 성가대를 지휘하고, 아홉 명의 자녀를 기르는 아버지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평생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교회와 소박한 집을 오가며 일상을 예배로 드렸다.

 


  나는 평소 바흐의 음악을 사랑해왔다. 그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엄격한 화성과 장엄한 질서, 소박하고 맑은 울림, 따뜻한 인간미가 마음을 적셨다. 몇 해 전 고난주간에 마태수난곡을 들으며 큰 은혜를 받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바흐의 고난에는 동일하게 귀한 열매가 있음을 깨달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은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었고 바흐의 고난은 세상에 별처럼 빛나는 음악을 주었음을 묵상하면서 인간이 겪는 고난과 그 열매를 소설로 써보고 싶어졌다. 인생의 다양한 고난을 겪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소망을 전해주고자 창작한 작품이 <마태수난곡>인 것이다. 간단하게 줄거리를 소개한다.

 


  47세의 약사인 수진은 무작정 독일행 비행기에 올라 라이프치히로 향한다. 바흐가 27년간 칸토르로 봉직했던 성 토마스 교회를 방문하여 그의 삶을 확인해보고 싶어서다. 수진의 아버지는 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사경을 헤매고 있다. 평소 바흐의 음악과 삶을 흠모해 온 수진은 고난으로 점철된 아버지 삶의 의미를 라이프치히에서 찾고 싶어 대책 없이 약국 문도 닫은 채 갑작스럽게 여행을 결정한 것이다. 수진의 아버지는 한 눈 없는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남편에게 학대받는 어머니에 대한 연민을 갖고 성장했다. 시골의 농고를 졸업하고 서울 구로공단의 만년계장으로 힘들게 일하는 중에 첫 아내를 병으로 잃었다. 교회에서 만난 처녀, 목사님의 딸과 혼인하여 외동딸 수진을 낳고 아내와 딸을 지키는 일을 소명으로 알고 살았다. 딸이 약대를 졸업한 후 천사 같은 두 번째 아내마저 뇌출혈로 잃는 고난을 겪는다. 자처하여 독거노인으로 살아가던 아버지가 죽음 가까이 이르게 되자 수진은 평범한 삶의 의미를 찾고 싶어진다. 끊임없는 고통을 겪으며 성실한 일상을 살았던 아버지의 삶은 영원한 우주의 시간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확인할 수 없다면 삶도 흩어져버리는 구름과 같을 거라 여긴다. 수진은 기내에서 <마태수난곡>을 들으며 아버지와 바흐의 고난을 교차 회상하다가 라이프치히 땅에 내린다. 이튿날 아침, 성 토마스 교회를 찾은 수진은 예배당 스테인글라스에 새겨진 예수 그리스도와 바흐, 그리고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고난의 참 의미를 깨닫는다. 아버지 평생의 고난도 한 알의 밀알이 되어 후대에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을 확신한다. 고난에서 빚어낸 바흐의 음악이 우주까지 확장되어 영원히 울려 퍼지듯 한 사람의 평범하고 성실한 일상도 아름다운 음악이 되어 신 앞에 울려 퍼질 것을 깨닫고 미소 짓는다.

 


  결국 단편소설 <마태수난곡>은 모든 인생이 필연적으로 만나는 고난과 그 열매를 되새기고 있다. 한 편의 소설이 줄 수 있는 영향력이 크지 않을지라도 힘들고 어려운 현실을 살아가는 독자들과 고난 가운데 서 있는 성도들에게 작은 위로와 소망이 된다면 더 바랄 게 없다. 그것으로 이미 <마태수난곡>의 창작 의미는 충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