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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특별기고

성령님과 연대하라

 

코로나19를 이기는 우리의 자세

 



외부적 요인으로 자연스럽게 ‘연대’한 한국교회

… 반드시 필요한 것은 '성령의 기름부으심’

 

“연대하되 기도보다 앞서지 말라”


  우리는 지금 ‘은혜의 상실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위로부터 임하는 은총이 사라지면 제한된 자원을 더 갖기 위한 갈등은 불가피해진다. 그래서 나오는 방식이 ‘연대’이다. 우리가 힘을 합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머리 방향을 하늘을 향하고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 나서면 해결될 문제를 자기의 신념으로 인생을 풀어가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로 한국교회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방역을 제대로 하는지, 코로나19로 인한 행정지도를 성실하게 잘 따르고 있는지 확인이 늘 필요한 대상으로 전락하였다. 타 종교권보다 덜 성숙하여 스스로 방역체계를 지킬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교회만 콕 집어 명령하였으니 얼마나 자존심에 상처가 생겼겠는가? 흥미로운 것은 전쟁 대상이 동일해진 바람에 한국교회에 자연스럽게 ‘연대’가 일어나고 있다. 


  존슨이라는 악덕 농장주가 있다. 그는 날마다 술 취하여 채찍으로 동물들을 학대했다. 동물들이 너무 심각한 학대를 당하자 동물들이 자연스럽게 ‘연대’하여 주인인 존슨을 내쫓고 동물들의 힘으로 새로운 농장을 만들었다. 그들은 자치규약까지 만들었는데 흥미로운 것은 “두 발로 걷는 것은 모두 적이다.”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1945년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이 쓴 풍자소설 『동물농장』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결론은 다소 충격적이다. 어느 날 권력을 가진 돼지(나폴레옹)가 인간처럼 거드름을 피우며 두발로 걸어 다니면서 다른 동물들을 학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더 나아가 자기들의 적이라 생각했던 인간과 포커 게임을 하면서 낄낄거리며 놀기도 했다. 이런 장면을 다른 동물들이 창문 너머로 바라보면서 함께 ‘연대’했던 이들은 딜레마에 빠진다. 그리고는 창문 너머에 있는 이들이 누가 돼지인지, 누가 인간인지 알 수 없는 묘한 이미지를 남기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성령 없는 새로운 ‘연대’는 또 다른 권력을 형성하고, 결국에는 누가 짐승인지 누가 사람인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연대’에는 반드시 조직이 필요하고 돈도 필요하고 탁월한 기획과 행정력도 동반되어야 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성령의 기름 부으심(기도)’이다. 기도가 없으면 어떤 연대라도 ‘동물농장’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연대’를 용이하게 한 안내자와 같다. 교회마다 적극적으로 온라인을 활용하고 영상과 포털이 활성화되고, 자기 교회 밖에 몰랐던 성도가 교회 밖의 모임과 스터디 등을 통해 다른 교회 목사님들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연대’가 용이해지고 ‘공유’가 쉬워졌다. 물론 여기에 코로나19의 역기능과 순기능이 교차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 즉, 나와 다른 점 때문에 느꼈던 매력이 그 다른 점 때문에 갈등이 될 수도 있다. ‘연대의 용이함과 공유의 활성화’. 이것은 코로나19가 우리에게 남겨준 엄청난 축복이기도 하지만 염려이기도 한 이유다.


  내 자원이 빠져나가기도 하지만 다른 자원이 들어오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잘 활용하면 하나님 나라에 엄청나게 기여하게 되리라 확신한다. 비대면 시대에는 ‘연대와 공유의 속도’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발전한다.


  루터의 고백처럼 “나는 너무 바쁘다. 그러므로 더 많이 기도할 것이다.” ‘연대’하되 기도보다 앞서지 말라. 순기능과 역기능 가운데 어느 것이 꽃을 피울는지 그것은 전적으로 당신의 기도하는 무릎에 달려있다. 답은 하나이다. 주님과 연대하라! 그러면 새로운 꽃을 피워내리라 믿는다.

 


최성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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