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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주일과 헌금”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히11:4)

 11월이 다가오면 교회마다 추수감사주일을 준비하는 손길이 분주해진다. 한 해 동안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돌아보며 감사를 고백하는 이 절기는 많은 성도들에게 추석보다 더 큰 설렘과 기대를 안겨주는 시간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깊이 있는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만약 이번 추수감사주일이 내 생애 마지막이라면, 나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더 나아가 우리의 신앙생활 전체를 관통하는 본질적 질문이 있다. “내가 정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있는가?” 이것은 단순한 종교적 의무감을 넘어, 우리 존재의 의미와 직결되는 생명적 질문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아벨의 믿음을 언급하며, 그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고 증언한다. 흥미로운 점은 두 사람 모두 제사를 드렸다는 사실이다. 농사꾼이었던 가인은 땅의 소산물을, 목자였던 아벨은 양을 드렸다. 겉으로 보기에는 각자의 직업에 따른 자연스러운 헌물이었다.

  그러나 창세기 4장 4절은 결정적인 차이를 보여줍니다.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기서 주목해야 할 핵심 단어는 바로 ‘첫 새끼’이다. 반면 가인은 단순히 “땅의 소산으로” 드렸다고만 기록되어 있다. 첫 열매라는 언급이 없는 것이다.

  ‘첫째’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까? 그것은 우선순위를 말한다. 아벨이 양의 첫 새끼를 드렸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의 인생에서 절대적 우선순위를 차지하고 계셨음을 보여준다. 이는 예수님께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태복음 6:33)고 말씀하신 것과 일맥상통한다.

  우선순위는 단순한 시간 배열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가치관을 드러내고, 우리가 무엇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여유가 생기면 감사하고, 시간이 나면 예배하고, 돈이 남으면 헌금하는 것과, 모든 것에 앞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 사이에는 천지 차이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헌금을 단순히 물질의 문제로 생각한다. 그러나 헌금은 결코 돈의 문제가 아니다. 헌금은 존재의 문제요, 철학의 문제이다. 우리가 헌금을 드릴 때, 단순히 화폐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 자체를, 우리의 정신과 헌신을 드리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창세기 4장 4절이 보여주는 놀라운 진리이다.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 순서를 주목하라. 하나님은 제물을 받기 전에 먼저 아벨을 받으셨다. 제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드리는 사람의 마음이요, 그 사람 자체였던 것이다.

  본문은 아벨의 예물에 대해 하나님이 “친히 증거하셨다”고 기록한다. 이것은 단순한 인정을 넘어선, 하나님의 공식적인 확증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결과는 명백하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정하시고,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며, 우리에게 영원한 상을 주신다.

  아벨의 이야기는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말한다. 그의 믿음은 죽음 이후에도 여전히 말하고 있다고 성경은 증언한다. 진정한 헌신으로 드려진 예물은 시간을 초월하여 영원한 가치를 지니게 된다.

  이번 추수감사주일을 준비하며,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자. 나의 감사는 진정 우선순위에서 나오는 것인가? 나의 헌금은 남는 것을 드리는 것인가, 아니면 첫 것을 드리는 것인가?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나의 제물보다 먼저 나 자신을 받으실 수 있는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은 의지적 결단을 요구한다. 그것이 옳기 때문에, 그분이 합당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 이번 추수감사주일이 단순히 감사 헌금을 드리는 날이 아니라, 아벨처럼 우리의 존재 자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시간이 되기를 소원한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드리는 이 감사의 고백이, 우리 인생의 우선순위를 재정립하는 계기가 되고, 하나님께서 친히 받으시고 증거하시는 산 제사가 되기를 기도한다.

이기운 목사(울산비전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