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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특별기고

[여름성경학교 특집] 다음 세대인가? 다른 세대인가?

 

장 두려운 세대차이는 “신앙의 차이”


부모세대 관심의 부재가 다음세대를 다른 세대로 만들 수 있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해야 할 ‘복음’
“아이들을 숫자가 아닌 ‘존재’로 대해야”



  우리가 요즘 자주 사용하는 용어 중에 ‘세대 차이’가 있다. 부모님들이 자녀들과 대화를 하다가 서로간의 생각의 차이가 클 때 흔히 세대 차이가 난다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가 다음 세대들을 대하면서 두려워해야 할 세대 차이는 생각과 문화와 언어의 차이가 아니다. 그것은 비본질적인 것이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본질적인 세대 차이는 바로 신앙의 차이이다. 부모의 세대가 믿는 하나님을 자녀의 세대가 믿지 않을 가능성이 점점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난 25년간 다음세대 사역을 하다가 한 달 전 울산신정교회의 담임목사로 부임한 후 울산 지역 곳곳을 둘러볼 기회를 가졌다. 곳곳에 세워진 교회당 건물과 십자가를 보면서 울산 땅에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느껴져서 가슴 벅차고 감사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스스로 이런 생각이 들어 두려웠다. ‘10년 후, 20년 후에도 우리의 자녀들이 우리와 같은 신앙을 가지고 우리의 다음 세대로서 이 교회에서 예배하고 있을까?’


  얼마 전 서울 강남에 있는 모 대형교회의 고등부 수련회에 말씀을 전하러 갔다. 예외는 있겠지만 보통 한 교회 중고등부의 출석이 장년 출석의 1/10 정도면 평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장년이 매주 몇만 명이 출석하는 그 교회의 고등부 수련회에는 학생이 88명이 앉아있었다. 충격이었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 이것이 그 교회만의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서울과 수도권을 넘어서서 전국의 수많은 교회에서 다음 세대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부모 세대가 깨달아야 할 본질적인 원인
  원인은 무엇일까? 세상이 교회보다 재밌기도 하고, 아이들이 예전보다 더 바쁘기도 하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부모 세대가 깨달아야 할 더 본질적인 원인을 열왕기상 19장의 한 스토리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스라엘에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한 한 왕이 있었다. 그는 왕위에 등극하자마자 종교개혁을 단행하고, 모든 산당을 다 철폐했다. 그리고 인생의 어려움의 문제를 기도를 통해 돌파하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의 아들 므낫세였다. 므낫세는 12살에 왕이 되었는데, 왕이 되자마자 그의 아버지가 헐어버렸던 산당을 다시 짓기 시작했다.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고, 하늘의 일월성신을 섬기면서, 우상들에게 제사를 지낸답시고 수많은 사람들을 그 앞에서 죽였다. 어떻게 그렇게 선한 왕 밑에서 이렇게 악한 왕이 나올 수가 있다는 말인가? 아들 므낫세가 이렇게 된 데에는 아버지 히스기야의 결정적인 실수가 있었다. 


  하루는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를 찾아와서 충격적인 예언을 했다. “왕이시여. 곧 나라가 망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아들 중에서 포로로 끌려갈 것입니다.” 얼마나 충격적인 예언인가? 나라가 망할 것이다, 아들이 포로로 끌려갈 것이다, 이것보다 더 충격적인 예언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히스기야의 반응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이 전한바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 하고 또 이르되 만일 내가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 하니라”(왕하 20:19)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 만일 내가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 그는 ‘내가 사는 날 동안’과 이 때 임한 ‘태평과 진실’에 주목하고 있지, 그의 다음 세대에는 주목하지 않은 것을 보게 된다. 그는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일지 몰라도, 그의 다음 세대를 말씀으로 준비시키지 않았다. 그 결과가 바로 다시 산당을 세우고, 우상 숭배를 하면서 여호와를 멸시하는 므낫세였다.


  부모 세대의 관심의 부재가 다음 세대를 다른 세대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삿 2:10) 부모 세대가 광야에서 날마다 하나님을 경험하다가 자신만의 땅이 생기고 그 곳에서 안정적인 삶이 시작되자 하나님을 찾지 않게 되었다. 자신이 경험하는 하나님이 없으니깐 자녀들에게도 자연스레 하나님을 가르치지 않게 되었다. 그 결과 다음 세대가 다른 세대가 된 것이다. 이것이 오래전 이스라엘 백성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오늘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이런 영적 세대 차이가 울산 땅에서도 일어날 수 있음에 우리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자녀를 ‘다음 세대’로 세워가기 위해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 자녀들을 다른 세대가 아닌 다음 세대로 세워가기 위해서 첫 번째로는, 그들에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서 대부분의 교회들이 한동안 현장 예배를 드리지 못했고,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렸다. 처음에는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린다는 자체가 신기하기도 했고 관심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아이들은 교회에서 제공하는 영상에 클릭 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울산은 코로나19 사태가 진정국면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아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 여름에는 예전과 동일한 방식으로 수련회나 성경학교를 진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마 원데이(1-day)형식으로 주말을 활용해서 여름 행사를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비록 기간은 줄어들고 프로그램은 다양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주어진 환경 가운데서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해야 한다. 대부분의 청소년, 어린이들이 수련회나 성경학교를 통해서 거듭남을 경험하고 신앙이 성장한다는 데이터를 절대 무시해서는 안된다. 복음이라는 영적 다이너마이트가 그들의 삶 속에 터트려지고, 그래서 그들이 믿음의 다음 세대로 살아가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다른 세대가 아닌 다음 세대로 세워가기 위한 두 번째는, 지금부터라도 아이들을 숫자가 아닌 ‘존재’로 대해야 한다. 주일날 교회 와서 출석 부를 때 대답하는 것으로 만족하거나 아이들을 우리 교회 총 몇 명 중 한 명 정도로 생각해서는 더 이상 아이들을 붙잡을 수가 없다. 주일 뿐 아니라 주중에도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관심을 가지고 만나고 연락해야 한다. 그래야만 아이들은 나를 몇 등, 몇 등급, 몇 점 등의 숫자로 대하는 세상과는 다르게 나의 존재 자체를 소중히 생각해주는 교회에 대해서 마음이 열린다. 그리고 발걸음을 하나님께로 옮기게 된다.


  필자는 25년 동안 다음 세대들을 만나고 가르치면서 늘 발견하고 확인한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깨어진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있다. 친구들과의 관계적인 어려움으로 큰 상처를 경험하는 아이들이 있다. 집이 가난해서 공부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공통적으로 부르고 믿고 붙잡는 이름이 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이번 여름에도 각 교회의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우리의 사랑과 관심을 통해 마음을 활짝 열고, 그 활짝 열린 마음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씨앗이 심겨져서, 모두가 다른 세대가 아닌 다음 세대로 세워져 나가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김보성 목사

울산신정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