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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특별기고

[크리스천 예술인을 만나다!] 성악가 주유진 씨.

 

 

"험한 여정이지만, 하나님의 방향으로 이끌어 주심을 느껴요!"

 

 

울산의 빛에서는 세계적으로 명성있는 네덜란드 왕립음대에 합격한 유일한 아시아인 성악가 주유진씨를 만났습니다. 이번 대화를 통해 어떤 상황이 닥쳐올지라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함께 나누고, 그 은혜가 더해지길 소망합니다. 


-편집자 주

 

 

세계적인 반주자 헬무트 도이치와 주유진 씨.


- 네덜란드 왕립 음대 합격을 축하합니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먼저 이렇게 울산의 빛 독자들을 지면을 통해 만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저도 울산에서 태어났고, 중학교는 성안중을 1회 졸업했어요. 부산예술고등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을 졸업 후 울산 인재양성을 위해 울산광역시소년소녀합창단 지휘자, 부산시립합창단원으로도 활동했습니다.   제가 올해 합격한 네덜란드 왕립음대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왕’이 대학교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학교입니다. 왕정이 직접 운영하기에 전세계적으로 몇군데 되지 않고, 특별히 음악계에는 왕립 출신들이 세계 음악을 주도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명한 음대들의 교수님들이 대부분 왕립 출신이기도 하시죠.   감사하게도 저는 네덜란드 왕립음대에 성악부문(소프라노)으로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올해 아시아인으로는 유일하게 제가 선정되었어요. 한국 출신의 소프라노는 30년 만이고, 울산 출신으로는 최초입니다. 9월부터 본격적인 학기가 시작되는데 앞으로 펼쳐질 일들이 설레기도 하고 떨리기도 합니다.”

 


- 신앙생활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다면?


“지금은 아니지만, 제가 어릴때 부모님께서 ‘절’을 운영하셨어요. 동시에 저는 초등학교 4학년때 친구를 응원하러 KBS 성악동요대회에 갔다가 노래를 시작하게 되었죠. 대부분 노래 선생님들은 교회에서 지휘자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자연스럽게 교회에 가서 노래하고 찬양대로 섬기곤 했습니다. 레슨을 해주시는 선생님을 통해서 저 혼자 교회에 다니고 있었는데, 고등학교 때 문득 엄마에게 교회에 가자고 말했어요. 항상 제가 보던 부모님의 모습은 근심과 걱정이 가득했는데, 교회에서 뵙는 사람들은 늘 얼굴이 밝았거든요. 그래서 엄마께 ‘난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한번 교회에 왔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한거죠. 순수한 동기로 우리가족이 행복하기를 바랐던 것이에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 밝은 표정의 분들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결코 풍족하거나 성공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거예요. 하지만 예수님 한분으로 만족하고 하나님과 관계 가운데 풍성한 삶을 누리고 계신 분들이었죠.”

 

 

- 지금은 온가족이 함께 신앙생활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유진씨를 통해 모두 교회로 나오신건가요?


“네 맞아요 그렇게 엄마께 교회에 가자고 말한뒤 3~4개월쯤 흘렀을까요? 운영하시던 절이 자연스레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나오시고, 매일 빠지지 않고 새벽기도회에 참석하셨어요. 사실은 부모님을 위해 정말 많이 기도했습니다. 부모님이 행복하고 평온하시기를 언제나 하나님께 구했어요. 특히 어린시절 엄마를 생각해보면 늘 아프시고 몸이 안좋으셨는데, 교회에 다니시면서부터 굉장히 건강해지셨어요. 이런 엄마를 보면서 남동생도, 아빠도 자연스럽게 교회로 오게 되었어요. 우리 가정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늘 감사하고 놀랍답니다.”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에게 레슨을 받고 있는 주유진 씨.

 


- 특별히 힘을 주는 성경구절이나 말씀이 있나요?


“시편 23편 말씀입니다. 말씀 자체로 저에게 큰 힘이 되지만, 대학교 때 알게된 놀라운 사실이 있어요. 우연히 어릴때 사진을 가족들과 보다가 제 돌잔치 사진을 유심히 봤는데요. 어린 저 뒤로 작은 병풍이 세워져 있었어요. 한글로 쓰여져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시편 23편 1절~6절까지 적힌 말씀이었어요. 하나님께서는 우리는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삶의 모든 순간을 예비하시고 하나님 앞으로 이끄시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대학교를 졸업하고 유학을 가기 전까지 남들과는 조금 다른 과정을 겪었다고 들었습니다.


“클래식 예체능계는 대학교를 졸업 후에는 바로 유학을 가는것이 전형적인 과정이에요. 그래야 남들과 경쟁에서 밀리지않기 때문이죠. 더더욱이 제가 졸업한 국가인재양성을 위해 설립된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졸업생들에게 유학은 자연스런 코스이죠. 동기 중에는 이미 유학생활을 끝내고 돌아 온 친구들도 있습니다.   노래에 대한 꿈을 이루려고 저는 음악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한국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습니다. 기본적인 성악 레슨은 물론이고 대형교회 지휘, 어린이합창단 지휘, 그리고 피아노학원에서 레슨을 했어요. 물론 지금도 하고있어요.  학원에서 하루에 50~60명을 레슨하고 목이 다쉬어서 온몸이 땀으로 젖어 집으로 오는 길에 ‘왜 나에게 이렇게 고난을 많이 주시는지, 왜 하필 나만 이러느냐’고  절규하며 하나님께 참 많이 울며 원망도 많이 했어요. 그때 어리석게도 하나님께서 제가 노래하기를 원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알 수 있었죠. 하나님께서 저를 담금질을 하시고 계시다는 걸요. 꼭 모든 걸 포기하고 있을때쯤 저에게 사람을 보내주셨거든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난을 사랑으로 받아들이니 지금은 더할 수 없는 감사로 다가옵니다.” 

 

 


- 고난이 감사가 되었다고 하셨는데요.


“네. 대학교 졸업 후 음악인으로서 거의 모든 일을 다 경험했는데, 사회경험이 처음이라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용하려는 담금질이라고 생각해요. 그 고난으로 인해 사소한 작은것에 행복을 깨닫게 되었고, 그 깨달음을 통해 하나님께 진심으로 찬양을 할수있게 되었으며, 노래에 깊이감이 생겼거든요. 더 감사한 것은 고난의 시절을 겪으며 오직 하나님만 꼭 붙잡고 기도 할 수 있었던 것이에요.”

 

아만드 해커스 교수(왕립전문교수)


- 7년정도 노래를 쉬셨다고 들었어요. 7년은 길다면 긴 시간인데, 어떻게 다시 노래에 대한 목표가 생겼나요?


“학교 졸업 후 유학을 가지 못해 인생을 실패한 패배자란 생각이 들고 모든 삶이 끝났다는 생각으로 인해 우울한 삶을 살고 있었죠. 어느날 제 친구가 대뜸 꿈을  가져보라고 했어요. 하지만 현실에 지쳐있던 전 그저 꿈도 꾸려면 환경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차가운 답만 내놓았죠. 이런 저를 보며 꿈이 없는 삶은 쉽지만, 고난의 연속적인 힘든 삶이 될거라고 한마디 하더군요. 저는 그 말이 친구를 통해 하나님께서 전해주신 말이라고 생각해요. 꿈을 가지라는 말을 듣는 순간 흑백으로 보이던 세상이 다시 색감이 있게 보여졌거든요.  저는 모든 건 하나님이 예비하신 때에 사람을 통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제가 겪은 하나님은 그러셨어요. 하나님께서는 필요하신 때에 사람을 통해 정확히 일깨워주셨어요.   그러나 현실적으로 다시 노래를 하려면 레슨비부터 시작해서, 거의 7년을 쉬었기 때문에 여러가지 걱정에 막막했는데요, 여기서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었고 기회가 주어졌어요. 어느 날은 모르는 번호로 몇번이나 전화가 와서 받아봤는데, 예전에 알던 한예종 은퇴 교수님이셨어요. 교수님께서는 노래를 그만뒀다고 들었는데 다시 해보는게 어떻겠느냐고 하셨죠. 성악도 몸안에 근육을 이용하여 멀리 보내는 발성이기 때문에 이미 내 생각과 달리 제 몸은 성대근육은 다 풀어져 목소리가 나오질 않더군요. 다시 처음으로 노래를 배우는 학생의 마음가짐으로 1년 가까이 무료로 배울 수 있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무엇보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은 알지못하나 하나님은 너를 아주 많이 사랑하신다고, 너를 불쌍히 여겨 항상 보신다며 기도하며 열심히 다시 노래를 시작해보라고 하셨어요. 저는 정말 좋은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계속 붙여주셔서 저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이끌어가시는 것 같아요.”                   

 

  >>다음호에 계속
김상희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