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췌장이야기"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가 2018년 애니메이션과 영화로 소개된 적이 있다. 제목과는 다르게 이 일본 영화는 공포영화나 스릴러 물이 아니라, 로맨스 드라마였다. 췌장암에 걸린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주인공의 엇갈리는 감정선의 애틋함은, 이와이 수운지 감독의 ‘러브레터’와 ‘4월 이야기’ 속의 일본 특유의 아기자기한 서정성을 담아내고 있었다.
4월에 흐드러지는 벚꽃이 피는 아름다운 계절에 벚꽃을 배경으로 하며(하물며 여주인공 이름이 사쿠라)
가장 예후가 안 좋은 췌장암의 설정은 그만큼 역설적이었다. 예정되어 있는 시한부 운명이지만 마지막 결말의 황망함은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궁금하신 분은 찾아보면 좋겠다.
어쨌거나 이 영화를 보면서 췌장암에 걸린 여고생이 여행 가방에서 인슐린 주사가 나오는 디테일을 보고는 개연성이 있는 장면이라 생각했다. 인슐린 치료가 필요한 인슐린 의존 당뇨의 경우 췌장의 기능장애로 췌장의 다른 질환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췌장암은 영화에서처럼 젊은 나이에 흔히 발병하지는 않지만, 증상이 거의 없기에 진단이 늦고, 복통이나 체중감소 등의 증상이나 새롭게 생긴 당뇨병 등의 소견으로 인해서 검사를 하다 늦게 발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췌장 쪽은 건강검진을 통해서 검사를 하는 것이 쉽지 않다. 복부 초음파 검사는 쉽게 할 수 있는 검사이지만, 췌장이 해부학적으로 위(stomach)의 뒤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금식을 하고 검사를 해도 췌장의 꼬리 쪽의 혹이 있다면 발견하기가 어렵고, 피검사를 통해서 췌장암 표지자 검사 “CA 19-9”이 있긴 하지만, 민감도나 특이도가 높은 검사는 아니고, 췌장 효소 수치 등도 있지만 췌장염을 나타나는 데는 필요한 검사이나 췌장암의 연관성은 떨어진다. 췌장암 가족력이 있거나, 당뇨병이 있는 환자분들은 췌장 질환을 꼭 배제하기 위해서 복부 CT를 검사 하는 것이 좋다.
그중에 오늘 살펴볼 질환은 췌장 유두상 점액 종양(IPMN)이란 질병이다. 애플의 CEO였던 스티브 잡스가 췌장암의 일종인 IPMN 에 의한 신경 내분비 종양으로 알려져 있다.
췌장은 머리와 몸통, 꼬리 세 부분으로 나눠지는데 이러한 췌장에 생기는 혹은 우리가 흔하게 물혹(cystic mass)라고 불리는 혹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췌장 유두상 점액종양(IPMN)은 60대 이상의 고령에서 호발하고, 악성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타입을 감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췌장의 주체관(main duct) 을 침범 확장시키는 주체관형(main duct type) 인지 부췌관형 (branch duct type)인지 판단이 중요하다. 주췌관을 침범한 타입이라면 악성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수술을 권유 하고 부췌관형이라고 판단된다면 정기적으로 추적 검사를 해서 크기 변화를 관찰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이러한 검사가 복부 CT에서 구분이 어렵다면 복부 MRI검사를 통하거나 내시경 초음파(EUS) 등의 특수 내시경 검사가 더 필요할 수도 있다. 췌장암과 같은 질병은 증상이 생기면 이미 치료가 너무 늦어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최소한의 복부 초음파 검사와 조금 더 의심된다면 복부 CT를 적극적으로 검사 하는 것을 권유한다.
벌써 오래된 이야기지만, 내과 전공의 1년 차 시절 소화기 내과 분과를 담당했을 때 70대 여성분이 복통을 주 호소로 입원해서 복부 CT에서 췌장암이 발견된 기억이 있다. 발견되었을 당시에도 이미 복막전이까지 있는 상태여서 항암치료 정도도 하기 어려운 상태였기 때문에 남은 여생이 오래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이후에도 췌장암에 대한 진단을 하게 되는 환자들은 거의 대부분 60대 이상의 환자분들이었다.
우연히 일찍 발견되어 수술을 하러 3차 의료기관으로 보냈던 분들은 어쩌면 제2의 인생을 살고 계신지도 모르겠다. 다른 모든 암종보다 늦게 발견되어 치료가 어려운 췌장질환은 그만큼 본인이 건강에 대한 생활 습관과 정밀 검사들을 요하기에 조금이라도 의심되면 가까운 병원에서 의사와 상담 후 적절한 진단과 관리가 필요하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