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절망에 무릎 꿇을 수 없었던 이유』
지난 50년을 그저 슬쩍 훑어보기만 하여도 이 나라의 백성과 교회는 힘겹고 고통스러운 세월 보내왔음을 알 수 있다. 50년대의 동족상잔의 비극 60년대의 혼란과 군사독재의 시작 70년대의 삼선 개헌과 유신 80년대의 광주 민주화 운동 90년대의 외환위기…. 그리고 우리는 2000년대를 맞았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세상살이와 나라 전체가 점점 나아지는 면도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절망스러운 소식들을 들으면서 산다. 급증하는 깨어지는 가정의 아픔 학교 교육의 붕괴에 따른 학부모의 혼동과 수험생들의 절망 적잖은 사람에게 자살을 마지막 출구로 몰아대는 무책임한 신용카드사 이런저런 모양으로 소외된 이웃들의 슬픈 이야기 나라와 백성 생각보다 정리 정략에 따라 이합집산과 이전투구를 거듭하는 정치인들 국제 경쟁력을 약화시킬 뿐 아니라 나라 전체를 부패 공화국으로 만드는 검은돈과 이를 중심으로 한 정치권의 공방들 남북의 갈등과 남남의 갈등에 이어진 세대 간의 갈등 주권 국가로서 자신의 소리를 내기에는 여전히 허약해 보이는 우리 정부…. 한도 끝도 없는 문제들이 2000년대의 중반을 향해 걸어 들어가고 있는 우리 백성들의 어깨를 짓누른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있는 우리 조국의 교회를 바라볼 때 소망스런 마음보다는 절망스런 답답한 마음이 든다. 이제는 기독교를 삶의 대안으로 조차 여기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 교회를 떠나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유리하는 교인들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교회의 본질로부터 자꾸만 멀어져 가는 우리 교회의 모습 ‘이 세대’의 가치가 부끄럼 없이 스며들어 버린 우리 교회의 모습과 그리스도인들의 삶. 그리고 기독교를 ‘개독교’라 부르는 무리들을 배태시켜 낸 수도 많고 종류도 많은 문제들….
우리 백성과 우리 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부정적인 문제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긍정적인 부분들이 있다고 주장하고 싶고 또 그러한 면들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한 해를 새롭게 시작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우리를 절망에 무릎 꿇게 하려는 듯 수많은 문제로 우리를 옥죄온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가 절망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단지 하나님은 하나님의 교회를 결코 버리시지 않는다는 ‘근거가 약한 낙관론’이나 어쨌든 점점 나아질 것이라는 ‘근거가 없는 소망’으로 이러한 절망을 극복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이러한 시대상에 눈 돌리고 내 할 일만 열심히 하겠다는 ‘소시민적 성실 주의’ 또한 설득력 있는 답변으로 보이지 않는다.
우리와 비슷한 세상을 살면서도 절망에 무릎 꿇기보다는 절망보다 더 강한 소망으로 삶의 경주를 완수하였던 성경 속의 수많은 사람 중에서 사도 바울에게서 그의 비결을 들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