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서는 「비늘천장」을 포함해 총 7편의 단편들이 묶여진 소설집이다. 저자의 글은 묵직하다. 생각을 곱씹게 만들고 글의 깊이에 문득 침잠하게 만드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가볍게 읽어서는 그의 사유와 진면목을 제대로 길어내기 힘들 수도 있다. 세밀하게 살피지 않으면 저자가 믿음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파악하기도 힘들다. 서사로 입혀진 사유의 속살들이 드러나고 나서야 ‘아하!’ 감탄하게 된다. 저자가 그려내고 표현하는 이야기가 담고 있는 질문들과 사상들을 길어내지 못하면 소설의 진면목을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나님 앞에서의 평등, 인간의 불완전성 등
기독교적 사상을 서사에 실어 표현
저자는 1961년 영덕에서 출생했다. 영남대 독문과와 동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고, 1990년 「동아일보」 신문문혜에서 중편소설로 등단하여 작품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소설집 『슬픈 열대』, 『황금색 발톺』, 『태를 기른 형제들』, 『어린 연금술사』, 『유혹의 형식』 등을 필두로 다수의 장‧단편 소설과 수필을 기고하고 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평등사상과 실존적 삶의 날 것과 실패, 인간의 불완전성을 서사에 실어 표현하고 있다. 「비늘천장」 역시 빼어난 단편으로 나약한 인간군상과 불완전성을 잘 표현해내고 있다.
만주 땅 봉천에서 평양까지 「누가복음젼셔」를 봇짐에 담아 숨긴 채, 목숨을 걸고 활자를 조판하기 위해 나선 걸음. 성령의 감동으로 된 『셩셔』 활자를 새길 인물로 복인춘이 낙점되었다. 그는 200년 넘게 이어온 활자장인 집안에서 만개하듯 꽃을 피운 뛰어난 활자숭배자였다. 우리말로 된 성경을 아로새길 인물로 복인춘 외에는 없다고 결론 내려졌고, 평양 감영에 머무르는 그를 찾아 부탁하기 위해 나서서 만나면서 빚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3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부고를 전하면서 한글로 번역 된 「누가복음」을 내놓아 조판을 부탁하러 갔지만, 돌아온 대답은 거절이었다. “나는 요즘 판각을 하지 않네.” 예전의 복인춘이 아니었다. 사람이 변했다. 거룩한 변화가 아니라 교서관의 일원이 되면서 그는 변질되어 보였다. 거절당한 후에 먼 걸음과 모험을 생각하여 다시 한 번 부탁하러 용기를 내었지만, 그는 투전판에 깊이 빠져 있었다. 배려로 하룻밤 묵어가게 된 끝 방에 누워 벽지를 바라보았다. 한문(漢文)으로 된 「마태복음」이 방을 가득 두르고 있었다. 잠 못 이룬 그는 새벽에 복인춘의 집을 찾아가게 되고,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내가 그 양인을 죽인 사람이라네.” 이양선을 불태우는 일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토마스 선교사를 죽인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고 고백한다. 판각장인 복인춘의 손으로 한글성경을 인쇄하려던 도모는 결국 실패하고 만다. 1881년 대동강에서 제너럴 셔먼 호가 불탄지 15년이 지나서야 일본 요코하마에서 조선어 활자로 인쇄된 「누가복음」 3,000부가 봉천에 도착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우리말로 된 성경에 대한
열망과 수고를 담은 소설
박해로 가득했던 무서운 시절에 우리말로 된 성경에 대한 선배들의 열망과 수고를 일부나마 볼 수 있다. 만주선교사 존 로스나 메킨타이어, 서상륜과 백홍준을 비롯한 초기 선교의 역사적 사실에 기반 한 소설이기에 매우 사실적이다. 대동 강변에서 토마스 선교사를 죽인 복인춘과 그가 전달한 성경이 어떻게 퍼져났고 사람을 변화시켰는가를 더듬어 짐작하게 한다. 서해를 통해 시도된 쿠츨라프 선교사나, 만주를 통해서, 또 이수정을 비롯한 일본에서 건너온 성경의 전달과 전파는 한국교회의 축복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실패를 숨김없이 드러내는 리얼리티이다. 성신(聖神)이 사라진 복인춘의 모습은 벌거벗은 벌레와 다름이 없었다. 예리한 예술성과 신실함은 온데 간 데 없었다. 고착된 긴 박해의 시‧공간이 그를 무너뜨렸다. 먼 걸음은 헛걸음이 되었고, 파괴된 상태를 되돌릴 방법도 보이지 않았다. 변화인지 변질인지, 배도인지 아닌지의 모호함이 복선을 타고 흐른다. 무서운 핍박 앞에서 배도의 길을 걸었던 신부의 이야기를 담은 엔도 슈사쿠의 『침묵』에 버금가는 여운을 던지고 있다.
성경 또한 리얼리티를 말하지 않던가. 학자들과 강고한 군인들까지 회개하며 돌아서게 한 위대한 선지자 세례요한이 헤로디아의 딸 춤사위 한 번에 목이 잘려 소반에 담겼다. 피로 흥건하게 젖은 세례요한의 목에서 정의가 실종된 비루한 현실을 본다. 수많은 표적과 가르침, 메시야로 이 땅에 오셨지만 벌거벗은 채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 죄로 인해 굴절된 이 땅에서 곧게 펴진 정의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간 욥에게 닥친 무서운 고난과 역경은 삶의 신비와 아이러니, 우리의 무력함을 잘 전달하고 있다. 「비늘천장」에서 말하는 이야기의 맥이 이와 많이 닮았다.
책읽기 좋은 계절이다. 조석으로 쌀쌀함이 묻어나는 시월에 권하고픈 소설이다.
이종인 목사
울산언약교회 담임
울산대학교 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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