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단체에서 코로나19로 집에서 지내는 장애인들에게 캠핑카를 대여해주고 1박 2일 여행경비를 지원하겠다는 공지가 있었다. 지원 신청서를 검토해 보고 심사하여 대상자를 선정한다고 했다.
곧 생일이 다가오는데 생일날 여행을 통하여 멋진 추억을 만들고 싶다는 장문의 신청서를 보냈다. 다행히 대상자로 선정되어서 남편과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코로나로 집에서만 지내는 반복된 생활에서 벗어나 캠핑카를 타고 떠나는 여행은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었다.
TV에서만 보아오던 캠핑카는 카니발 차 실내에 두 사람이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숙식 공간이 잘 꾸며져 있었다. 찌개 한 가지만 끓여서 먹어도 동심으로 돌아가 소꿉놀이하는 것처럼 재미가 쏠쏠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여건상 우리는 식사는 식당을 이용하고 이동 수단과 하룻밤 잠자는 것으로만 캠핑카를 사용하기로 했다.
유월의 자연은 온통 푸른색으로 가득했다. 남편도 기분이 좋은지 입이 귀에 걸린 채로 운전했다. 남편이 운전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처음에는 큰 차가 익숙지 않아서 그런지 급브레이크를 밟기도 하고, 규정 속력보다 느리게 운전하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자연스러워졌다.
경주 불국사에 도착했다. 보슬비가 촉촉이 내려서 그런지 사찰 주변이 한산했다. 남편은 가던 길을 멈추고 내리는 비를 묵묵히 바라보더니 하늘에서 생일을 축하하는 폭죽을 터트리고 있다고 표현했다. 애정이 보이지 않는 밋밋한 말이지만 위로의 말처럼 들렸다. 천성이 무뚝뚝한 남편이라 큰 인심을 내서 한 말이라는 걸 알기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석가탑 다보탑이 우뚝 서 있는 절 마당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석가탑은 단조로워서 양복을 정갈하게 차려입은 남성 같다면 다보탑은 아름답게 치장하고 나온 중년 여성 같았다. 두 개의 탑이 나란히 있으니 친근한 오누이처럼 또는, 한 쌍의 부부가 서 있는 것 같기도 하여 보기 좋았다.
한참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돌아설 때였다. 검은색 마스크에 모자를 눌러쓴 두 청년이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순간, 이런 황당한 일이 있나 싶어서 한마디 하려고 올려다보다가 깜짝 놀랐다. 두 아들이 허허 웃으며 다가오지 않는가. 어쩐 일이냐고 물었더니 그냥 오고 싶었다고 했다. 아들은 손에 들고 있던 노란색 비닐 우의를 우리에게 입혀주었다. 생일 기념으로 불국사를 거쳐 석굴암을 여행할 거라고 했던 말을 귀담아듣고 있다가 큰아들이 동생을 데리고 온 듯했다. 생각지 않은 깜짝 이벤트에 뿌듯하고 기쁜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함께 석굴암으로 향했다. 토함산은 고도가 높고 비가 내려서 그런지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차마다 후미 등을 켜고 구불구불한 길을 거북이걸음으로 오르고 있었다. 남편은 유년 시절에 걸어서 소풍 갔던 길이라며, 그때는 이 먼 거리를 어떻게 걸어갔는지 모르겠다는 듯 지금은 가당찮은 일이라고 말했다.
얼마 동안 갔을까. 석굴암 주차장이 보였다. 아들은 주차를 마치고 휠체어를 빌려왔다. 큰아들은 남편을, 작은아들은 나를 태우고 석굴암까지 가며 여기저기에서 사진을 찍어주었다. 비를 맞으면서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 아들들을 보면서 둘 중 하나는 딸이었으면 하고 바랐던 마음이 사라졌다.
석굴암 탐방을 마치고 경주 시내에 내려와서 저녁밥을 먹었다. 두 아들은 집으로 돌려보내고 우리는 포항으로 향했다. 다행히 비는 그쳤다. 우리는 화장실이 있는 바닷가 한적한 곳에 차를 주차하고 바닷가를 거닐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바다 저 멀리에는 고기잡이배에서 불빛이 반짝거렸다. 거센 파도와 싸우며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어부들의 손놀림이 보이는 듯했다.
주위를 살펴보니 캠핑카들이 많았다. 대구, 창원, 부산에서 왔다고 했다.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 자연에서 그간에 쌓인 노고를 풀고 재충전하려고 대부분 가족 단위로 온 듯이 보였다. 요즘 사람들은 현명하여서 피로가 쌓이면 풀어주면서 일한다. 그래서 캠핑카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시대의 흐름이 되었다.
어떻게 살아야 지혜롭게 사는 삶일까. 남편은 몇 해만 더 일하고 여유를 가지고 살자고 했다. 그러나 일하는 것을 낙으로 살아온 그에게 그 몇 년은 언제가 될지 모를 일이다. 나는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았지만, 우리 부부의 나이로 볼 때 여가를 즐기는 삶이 이미 진행되고 있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남편과 함께 여행하면서 여유로운 휴가를 즐겼다. 남에게 꾸러 갈 정도만 아니라면 쉬어가는 삶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쉬어간다는 것은 자신을 돌아보며 삶의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캠핑카 여행으로 가족과 되새길 소중한 추억을 만들었고 살아온 길을 돌아보는 귀중한 시간을 가졌다.
김용숙 집사
울산하늘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