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이 사랑하고 자랑하며 선포해야 하는 것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성경에 보면 십자가라는 단어가 신약에만 총 78회 나온다. 명사로는 32회, 동사로는 46회가 나온다. 이것을 크게 두 구분하면 하나는 “십자가의 사건” 중심으로서 사복음서에 52회이며, 다른 하나는 “십자가의 변증”으로서 바울서신에 21회, 그 외 사도행전에 2회, 히브리서에 2회, 요한계시록에 1회가 나온다.
우리는 보통 사도바울 하면 대복음전도자로 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십자가의 변증자”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성경 속에서 볼 수 있다. 사도바울의 증언이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갈6:14) 그리고 고후2:2 에서는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라고 했다.
우리는 여기에서 십자가의 본질을 찾게 된다. 십자가는 기독교의 본질이며, 기독교의 본질은 십자가이다. 같은 맥락에서 교회의 본질이 십자가인 것이다. 그러면 십자가의 본질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사랑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희생적인 사랑, 이타적인 사랑, 완전한 사랑이다. 원어로는 아가페(Agape)이다. 이 말을 우리의 신앙생활에 적용하면 순교적 사랑이다.
나는 한 교회에서 31년 10개월을 목회하면서 갈라디아서 6장 14절을 영구표어로 “십자가를 자랑하는 교회”로 하며, 20년간은 매년 십자가를 표어로 하였지만, 안타깝게도 십자가의 본질을 찾지 못한 채 은퇴하게 되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하나님의 은혜로 금년 2025년 3월 초에 십자가의 본질에 대한 말씀을 찾게 해주셨다. 그것은 바로 십계명이다.
십계명은 우리가 잘 알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여 시내 광야에서 모세를 통하여 받은 것으로 하나님의 명령으로 된 삶의 규례였다.(출20:2~17, 신5:6~21) 십계명은 크게 두 계명으로 구분된다. 첫째는 1~4계명으로서 하나님에 대한 대신 계명이며, 둘째는 5~10계명으로서 사람에 대한 대인 계명이다. 하나님께서 이 십계명을 주신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에 들어가서 꼭 지켜야 할 의무 규례인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신약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십계명을 사랑의 두계명으로 요약하여 설명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37~40)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첫 번째 계명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라고 말씀했다. 그러면 이 말씀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즉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예배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예배라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예배를 받으시는 것”이다. 십자가의 구조는 나무로 가로와 세로, 종과 횡으로 되어있다. 따라서 하나님과의 관계는 종적이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는 예배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자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자기 자신을 하나님 송두리째 드려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예배의 본질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4:23~24) 또한 사도바울의 증언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예배니라.”(롬12:1)
그리고 예배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구약의 제사법에서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제사가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이다.(레1~7장) 오늘날 교회의 당면한 문제는 십자가의 본질인 참된 예배의 회복이다. 즉 십자가의 영성이 예배의 영성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두 번째 계명은 이웃사랑이다. 이웃사랑에 대해서도 하나님을 사랑하듯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이 말씀 또한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즉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웃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이웃에 대한 “전도와 선교“이다. 다시 말해서 이웃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전도와 선교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서 예배받으시기를 기뻐하듯이 또한, 자기 백성들을 통하여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며 기뻐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십자가의 종적인 관계가 예배라면 십자가의 횡적인 관계는 전도와 선교인 것이다.
이 사실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것이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또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를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눅4:43) 그리고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막1:38) 이처럼 이웃사랑의 실제는 전도와 선교인 것이다.
즉,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의 희생의 섬김, 순교적 섬김이 요구된다. 영적, 육신적, 물질적 헌신으로 교회는 구령 사업에 온 힘을 쏟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교회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사명 자각은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새 생명운동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교회가 십자가의 영성으로 십자가의 본질을 회복할 때이다. 1960년대 미국의 시대적 예언자로 불리었던 “에이든 윌슨 토저목사”(Rev. A.W. Tozer)는 그의 책 “마이트 시리즈”(Might Series) 제6권 (Holy Spirit)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그들은 십자가를 주관적 십자가를 만들지 않고 객관적 십자가로 만들어 버렸고, 또 내면적 십자가로 만들지 않고 외형적 십자가로 만들어 버렸으며, 체험적 십자가가 아닌 제도적 십자가로 만들어 버렸다.”라고 했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십자가는 기독교와 교회의 본질이며 십자가의 본질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것은 오직, “십자가의 영성”으로만 가능하다.
여기에서 순교 신앙과 순교 정신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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